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문단 편집) == 사후 == 카시우스가 허망하게 죽으면서 반란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압되었지만, 마르쿠스는 동방으로 가서 민심을 다독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황후와 고문들을 이끌고 동방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소 파우스티나]] 황후가 병사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불필요한 복수를 피하고 싶어서 카시우스가 남긴 어떤 편지도 읽지 않았다. 따라서 마르티우스 베루스는 시리아에 입성한 뒤 카시우스가 주고 받은 모든 서한들을 불태웠으며, 반란에 합류한 이들에 대한 과도한 피의 보복 역시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하지 않았다. 이는 카시우스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그래서 장남 아비디우스 헬리오도루스는 목숨을 건져 겨우 추방형에 처해졌으며, 카시우스의 딸 아비디아 알렉산드라 부부는 [[반역]]과 무관했던 그녀의 [[삼촌]]에게 보호받는 형태로 목숨을 건졌다. 다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원로원은 이 사건 이후 파견지역 출신이나, 이 지역이 부모, 가족과 연관있는 경우 해당 속주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법을 바꿔 제2의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사태를 막았으며 총독들의 반란을 제어할 각종 장치를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따라서 175년 이후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출신지 혹은 부모, 친인척이 태어난 지역의 총독에 오르지 못했다. 아비디우스 카시우스는 명성과 기량을 겸한 능력자였고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신임했던 당대의 권력자이자 거물이었다. 그가 계속 생존했더라면 그의 지위와 위상, 저력 그리고 야망으로 마르쿠스 황제 사후 무능한 후계자 [[암군]] 겸 [[폭군]] [[콤모두스]] 치세에서 큰 영향을 끼쳤을 수 있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훨씬 더 좋은 조건 하에서 제위를 노려 도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는 음모론을 불문하고 잘못된 처신으로 자멸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